11월 28일(목) 오후 10시 20분 방영된 꼬꼬무 '울산 계모 살인사건 편'은 정말 차라리 거짓이었으면 좋겠다고 믿고 싶을 만큼 참혹하고 가슴 아픈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정인이 사건을 비롯해 수많은 아동학대 사건을 접해왔지만, 이번 이야기는 그중에서도 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오늘은 손꼽아 기다렸던 소풍날, 세상을 떠나야 했던 초등학교 2학년 아린이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2013년 울산에서 일어난 비극
2013년 울산 119접수센터에 다급한 신고 전화가 들어왔습니다. 한 여성이 자신의 아이가 욕조에 빠져서 숨을 쉬지 않는다며 신고했고, 그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가득했습니다. 여성은 119 대원의 지시에 따라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아이는 이미 심장이 멈춘 상태였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대원들이 본 욕실은 지나치게 깔끔했습니다. 상황에 비해 지나치게 정돈된 욕실에 의문을 느낀 경찰은 혈흔 검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욕실 주변에서 다량의 혈흔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부검 결과로 드러난 끔찍한 학대
경찰은 아린이가 계모로부터 지속적인 학대를 받아왔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했습니다. 부검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린이의 몸에는 수많은 멍 자국과 함께 치명적인 외상이 발견되었습니다. 머리에는 출혈이 있었고, 갈비뼈 16대가 부러져 있었으며, 그 결과 폐까지 손상되는 극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학대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여러 증거들이 드러났습니다. 허벅지뼈(대퇴골)이 완전히 부러진 흔적도 있었는데, 이는 교통사고와 같은 큰 충격이 아니면 일어나기 어려운 수준의 손상이었습니다. 계모는 병원에서 아린이가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이는 명백한 학대의 결과였습니다. 심지어 아린이의 팔다리에는 2도 화상의 흔적도 남아 있었는데, 계모는 이를 아이가 온수를 잘못 틀어서 생긴 것이라며 둘러댔습니다.
아빠의 방관, 그리고 무너진 보호자 역할
계모의 학대는 아린이의 어린이집 선생님에게도 포착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의 몸에 생긴 상처들을 보고 아빠에게 여러 차례 이를 알렸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오히려 계모를 옹호하며,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니 엄마가 때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직업 특성상 집에 자주 있지 못했으며, 집안 상황은 아내의 말만 믿고 따랐습니다. 계모는 남편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폭력과 학대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린이를 폄훼하며, 그녀의 행위를 훈육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방관 속에서 아린이는 점점 더 극심한 학대를 당하게 되었고, 결국 손꼽아 기다리던 소풍날 아린이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항소심에서 살인죄 인정, 18년형 선고
1심에서 계모는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아 1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추가적인 자료들이 제출되며 결국 살인죄 혐의가 인정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계모는 18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재판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된 것은 추가적인 부검감정서와 녹취였습니다. 그 녹취 내용은 방송을 통해 공개되었고, 이를 접한 사람들은 분노와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녹취 내용이 드러낸 진실, 그리고 대중의 분노
계모와 아린이의 녹취 내용은 너무나도 끔찍했습니다. 꼬꼬무를 진행해온 장도연마저 이번 에피소드는 참기 힘들었다고 밝힐 정도로, 녹취 속 아린이의 절박한 목소리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무너뜨렸습니다. 감정적으로 무뎌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번 사건을 접한 사람이라면 눈물을 참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린이 계모의 출소일은 2031년
아린이를 학대하고 생명을 앗아간 계모는 2013년 구속 수감되어 18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그녀의 출소일은 2031년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6년이 남은 셈입니다. 요즘 같았으면 신상이 공개되고, 더 무거운 형량이 내려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고, 18년형이라는 형량도 큰 처벌로 여겨졌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형벌은 너무나도 부족했다고 느껴집니다. 손꼽아 기다렸던 소풍날, 그렇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아린이. 멈추지 않는 고통 속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던 그 어린 소녀에게 오늘은 부끄러운 어른으로서 미안함을 전하고 싶습니다.